꿈Me꿈美

‘꿈Me’는

꿈이 있는 ‘나(Me)’이고 꿈미학생이 추구하는 첫 번째 북극성이다. 그렇다면 어떤 ‘나’일까? 현대는 ‘나’를 높이는 Big Me의 시대이다. 꿈을 꿀 때도 높아지는 꿈만 꾼다. 그러나 예수님은 Little Me로 이 땅에 오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지극히 작은 자로 말구유에 오셨다. 인간은 바벨탑을 쌓고 하늘까지 높아지려 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땅까지 낮아지셨다. 현대 과학은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가장 낮은 죄인의 자리에 앉히셨다.

그렇다면 꿈미학생의 자아상 ‘꿈Me’는 Big Me일까 Little Me일까? 『꽃들에게 희망을』 책을 펼치면 애벌레들이 서로를 짓밟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애벌레 기둥 그림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주인공 애벌레가 높아지는 꿈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 왔을 때 고치가 되고 나비가 되어 애벌레 기둥보다 더 높이 날아오른다. 그리고 꽃으로 가득한 벌판이 펼쳐진다. 애벌레 기둥이 즐비한 황량한 들판은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들판으로 바뀐다. 꽃들에게 희망이 된 나비는 이제 다시 애벌레 기둥으로 날아가 동료를 짓밟고 Big Me의 사다리를 오르는 애벌레들에게 나비의 삶이 있음을 알려준다.

꿈미학생이 꾸는 꿈은 이러한 나비의 삶을 사는 나비꿈이다. 예수님은 Little Me로 오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Big Me가 되셨다. 난쟁이는 비록 작은 자이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으면 거인보다 더 큰 자가 된다. ‘꿈Me’는 Litte Me이다. 그러나 Big Me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주셔서 꿈미학생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난쟁이가 된다. 그래서 꿈미학생이 향하는 첫 번째 북극성 ‘꿈Me’는 작은 거인 Little-Big Me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꽃들에게 희망이 되듯 꿈미학생은 하나님의 사람 ‘꿈Me’가 되어 꿈이 없는 미래에 희망이 된다.

‘꿈美’는

꿈이 있는 미래의 아름다움[美]이고 꿈미학생이 꿈꾸며 추구하는 두 번째 북극성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세계는 지금 탄식하며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만족해 하셨는데 그 때 사용하신 ‘좋았다’는 히브리어로 ‘토브’이며 ‘완전하다, 적합하다, 선하다, 아름답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답게 창조된 피조세계는 인간의 타락으로 이제 더이상 아름답지 못하다. 자연 생태계만 망가진 것이 아니라 가정도 해체되고 인간성도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美’는 타락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세상의 아름다움[美]의 회복을 꿈꾼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아름다움의 원형은 하나님 나라에 있지만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형은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은 자연환경에만 있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세계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은 관계적인 아름다움에 있음을 에덴동산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타락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오셨다. 관계가 완전히 회복될 때 에덴동산은 새 예루살렘으로 이 땅에 다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서 ‘꿈美’는 에덴동산에서 펼쳐졌던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세계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꿈미학생이 이 땅에서 회복하는 꿈이며 그 꿈을 통해 이루어진 회복된 세상의 아름다움[美]이다. 이러한 ‘꿈美’는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의 아름다움[美]을 통해 회복된 가정의 아름다움[美], 회복된 인간의 아름다움[美], 회복된 공동체의 아름다움[美], 회복된 자연세계의 아름다움[美]으로 계속 퍼져 나갈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책에서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듯 꿈미학생들이 나비꿈을 통해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